Ay caramba

일본의 경제보복을 돌아보며 본문

즐거움/시사

일본의 경제보복을 돌아보며

산책부부장 2019. 8. 5. 21:45

혼네와 다테마에는 일본과 일본인을 관통하는 본질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까지도 그들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한국이 경제적으로 점차 자립에 가까워져 가며 사회적 전반에 걸쳐서도 독자적이며 국내 환경에 적합한 이를 오래전부터 한국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분야에서 일컬어왔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도 사실입니다. 모델로 성장해 가는 것에 대한 일본의 초조함의 발현이 이번 경제보복의 혼네(본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혼네와 다테마에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잠언처럼 반복하는 주장이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고 한국의 발전을 위한 노하우와 자금을 아낌없이 제공해 주었다.’입니다. 미쓰비시 자동차가 현대자동차의 근간이 되어주었고 미쓰코시 백화점이 롯데백화점의 스승님이었으며 신일본제철이 포항제철의 기틀을 다져주었기에 백번 양보해서 이러한 전제가 바르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한국은 더는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없다는 것이 일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렌져 산타모 갤로퍼가 아니라 데보니아 샤리오 파제로 입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람들이 일 년에 750만 명이 방문하고 6조 원이 넘는 돈을 아낌없이 썼기에 가능해진 부분입니다. 오랜 기간 한국에 대한 멸시와 조롱에 익숙해 있던 일본인들이 한국과 한국인의 경제력을 체감하며 소위 인지 부조화를 겪게 되고 여기에 젊은 층들 사이에 급격하게 퍼져가는 한국에 대한 동경문화까지 겹치면서 아직 일본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 시점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면 자기들을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았다고 봅니다.

대마도의 한국인 거부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동안 한반도의 통일만 없으면 한국이 일본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현재의 동북아 구도를 최대한 일본의 관점에서 최대한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이에 한국의 식자들도 편승하여 통일비용을 부담하다가는 국가가 파산할 것이라며 국민들을 겁박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다양한 경제 지표를 읊지 않아도 체감상으로도 압도적이기도 했었습니다. 일본이 국력의 정점을 구가하던 80~90년대를 기억하고 있는 거의 모든 세대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그 이전 세대들은 실제 식민지 시대를 겪어왔을 터이니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처럼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깊은 각인이 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시티팝은 일본 버블경제의 상징 중에 하나입니다.

한일 간 무역 갈등의 시발점을 어디로 잡느냐부터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과 그에 따른 이력 추적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빌미로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삭제를 강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제노역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압류를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보다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1965년 한일수교를 통해 청구권을 소멸시켰고 강제노역과 더불어 개인청구권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2015년 불가역적인 합의를 선언해버렸다는 것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일본에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대법원에 개인청구권에 판결을 앞두고 당시 친일성향의 정부하의 사법부의 판단 또한 정부와 맥을 같이 하리라는 기대감인지 자신감인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일본에서 전격적으로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발표를 합니다

일본정부의 전격적인 개인청구권 인정 발언(2018.11)

정리하면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10억 엔을 출자하고 한국은 이와 관련하여 향후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 강제노역에 대해서는 개인청구권은 존재하나 한국의 사법부에서 이에 대한 청구권이 없다는 판결이 나오면 이를 근거로 일본은 더 어떠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라는 게 그들이 구상했던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지라 국정 실책에 대한 국민의 비폭력 정권교체를 통해 모든 것이 어그러지게(?) 되었고, 대법원에서도 일본의 예상과 다르게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 판결하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실질적인 법적 조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 담화에서 "국제적 연관을 떠난 우리만의 독존이나 번영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이해해달라는 말입니다. 묘한 기시감이 드는건 기분탓일까요?

세계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국가 간 공정무역은 정치 논리를 경제에 투영하지 않는다 것이 하나의 룰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수출 입국을 통해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음에도 경제를 볼모 삼아 정치적 논리가 우선시 되어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면 가뜩이나 지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흐름을 가속하는 세계정세와 맞물려 다시금 국수주의가 득세하는 갈등의 시대 단초가 되는 역사의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밑바탕이 되어 양적 성장을 누려왔던 시절이 저물어가면서 인종 간 세대 간 국가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통해 갈등을 봉합할 것인지 아니면 문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