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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지문서 본문
MfS /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공안국(Ministerium fr Staatssicherheit, 약자 MfS)은 슈타지(Stasi, 국가공안을 뜻하는 Staatssicherheit에서 유래)라고도 합니다.독일의 통일로 인해 동독 국가공안국의 활동 사항을 담은 파일카드 1700만개, 도청 테이프 9만여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이 비밀 문서는 공개하기로 하였고 이를 통해 서독안에서의 대(對)서독 침투 및 파괴활동이 일반의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숙이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습니다.
Satasi district map
슈타지는 서독의 학생운동, 평화운동, 반전운동 등 소위 양심세력들을 동독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도 성공했다. 서독 평화운동의 거두이자 오늘날까지 ‘마음 불편한 경고자’로 존경받고 있는 마틴 니묄러가 그 예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독일인들은 분단된 상태로 살 것이냐, 소련식 독재하의 재통일이냐는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공산주의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초 니묄러는 소련과 동독을 잇따라 방문했는데 당시 동독의 민주인사들이 줄줄이 체포된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슈타지는 평화운동을 자신들에게 새로운 간첩을 공급하는 인력창고로 생각했지만, 평화주의적 구호가 동독 지역으로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데는 최선을 다했다. 서독판 햇볕정책인 동방정책에 대해서도 슈타지는 “환상을 가지지 말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학생운동도 슈타지의 마수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역사학자이자 한때 사회주의 독일학생연맹 프랑크푸르트 지부 간부였던 볼프강 크라우스하르는 1998년에 ‘공산주의자들에게 놀아난 우리들의 학생시절’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에 따르면 슈타지는 학생운동 조직에 자신들의 간첩을 침투시켜 반미시위와 반전운동을 조장했고, 유력한 서독 학생운동 조직에서는 “익명으로만 한다면, 동독의 지원금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동독 측에 보낼 정도였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동독 정권 붕괴 후 간첩 혐의로 서독 국민을 상대로 수사에 들어간 사건은 약 3,000건에 달했고 그 가운데 253건만이 유죄로 판결됐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서독에서 활약한 간첩의 숫자나 범죄행위보다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했던 당시 서독 사회의 정치적·지적 분위기가 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서독 지식인 사회에서는 동독 편을 들어주고 동독을 인정해야만 ‘진보적’이라는 논리가 팽배했으며, 많은 서독인들은 독일의 적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슈타지 문서가 공개된 이후에 서독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뒤로는 동독 정부기관의 사주를 받아 서독내의 여론조장과 스파이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엄청난 질타를 받았고 모두 자연소멸되다시피 도태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은 통일로 인한 순기능으로 국론 분열을 막고 과거사청산을 통한 여론 화합을 조성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을 중심으로한 여론의 대립이 첨예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슈타지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분명 우리나라에도 고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작원들이 상당수 암약하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통일이 된다면 이런 국가 공안과 여론을 조장하는 세력들을 정리 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속히와서 더이상 소모적 논쟁없이 국력 증진에만 힘쓸수 있는 건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