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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의 유산

산책부부장 2008. 12. 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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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어렴풋한 CIA의 이미지는 어둠속에서 전지전능한 역활과 능력을 가지고 모든 공작을 자유세계수호를 위해 활동하는 파수꾼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매체를 통해 무분별하게 보이지 않게 세뇌된 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시대의 산물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이 세계 최대규모의 기구는 사실 보이지 않는 이란 말은 어찌 보면 규명되지 않은 적이니 얼마든지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썼다는 점이다. 그동안 단편적인 사실을 가지고 추론를 덧붙여 쓴 책들은 많았지만 십수년 동안의 취재를 통해 비밀해제 문서를 뒤지고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이 책은 그야말고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며 적나라하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기아에 허덕이는 유럽을 이러켜 세운건 그들의 기술력과 근면함도 아닌 바로 미국 달러의 힘이었다. 폭격기가 베를린 상공을 날며 폭탄을 투하하며 초토화로 만들더니 이젠 마치 비행기에서 돈을 뿌리듯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 유럽 전역에 뿌려졌다. 그중 미소 양국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서독이 가장 큰 혜택을 입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마샬플랜은 서유럽뿐만 아니라 CIA에게도 엄청난 기회였다. OSS에서 시작된 CIA는 조직과 자금력에서 허약한 모습을 보이며 정치인과 펜타곤 입장에서 보기에 아주 쪼잔한 작전이나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자금의 흐름이 생기자 여기에 파이프를 대고 조직을 운영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우물을 조성하게 된것이다. CIA는 마샬플렌 이후 외형적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과도한 자신감이 생기자 해외 공작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게 되는데 영화에서 자주 봐오던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CIA의 모습은 어디가고 그야말고 실패의 연속의 역사였다는 사실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한마디로 impassable is nothing 이라기보단 impassable is impassable 이라고나 할까나. 물론 그들의 역사에서도 빛나는 공작의 성과도 존재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건 공작의 승리라기보단 여러 요소가 성공적인 상황을 만들어 줬을뿐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이런 승리로 인한 고무감은 더욱 무모한 공작을 행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돈과 무기와 금괴 그리고 인명이 희생되었다.

정보력이라는 것은 내부자의 도움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기에 철의 장막 너머의 사정을 알기 위해 투입한 노력을 인공위성 개발에 더 투입했다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더 상세히 정보를 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관계자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에도 CIA는 그들의 미사일 부대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지만 그 보다 오래전 상점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내부 사정을 평가했다면 그런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공과사를 제쳐두더라도 어쨌든 성공한 기관의 역사를 관통하여 들여다 본다는건 여러모로 큰 즐거움이었다.